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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소년이 온다 ---한 강

January 17, 2017

86년도는 대학에 들어 간 해였다.

그맘 때 대학가는 오월이 오면 교내 어디서든 오월 사진전을 연다.

그 날은 비가 왔다 그쳤고, 그래서 비에 씻긴 최루가스가 빗물 웅덩이에 둥둥 떠 있던 덕에 모처럼 눈물을 흘리지 않고 강의실로 갈 수 있는 날이었다.

교문을 지나  단과대 건물로 들어 가는 길에 있는 버드나무에는 이제 막 새 잎이 돋아 눈이 부신 연두의 빛을 머금었고 눈을 찌를 듯한 자연의 빛이 아침해처럼 뜨끈해 지던 날이었다.

꽃에는 물이 오르고, 따뜻한 바람을 몰고 오고...그러다가 바람 끝에 세상의 귀가 열릴 것 같은 유독 감동으로 가슴이 묵직하게 내려 앉는 날이었다.

 

그리고 그 부신 빛에서 눈을 내리자,

그 버드나무 아래에는 옅은 그림자가 지고 그 위로 오월의 사진들이 늘어서 있었다.

오랫만에 눈이 맵지 않아 더 자세히 사진을 볼 수 있었다.

늘어져 있는 시체와 그위로 오열하는 어머니, 군인에게 끌려가는 청년들, 태극기에 감싸인 관 그 중에도 교련복을 입고 총으로 위협당하는 어린 학생의 사진도 있었다.

짐깐 동안 그게 뭘 의미하는지 몰랐다. 이미 광주 민주화 운동은 6년이 지나 있었지만, 그때까지 언론에서 다루지도 누군가가 내게 그에 대해 말을 해 주지도 않았다.

무슨 일인지는 꼼꼼하게 설명을 읽고 난 후였고,

그제사 그 해에 무슨 일이 있었던가 기억해 보려고 했다. 중학교 1학년 이었는데 아마 계엄령이 내려져 내가 있던 남쪽 도시에도 저녁 통금이 빨라졌던 것 같았다.

아버지는 퇴근 하자마자 서둘러 집으로 돌아 오셨고, 외가에 다니러 가던 기차에는 사람이 거의 없는 텅빈 열차를 탔던 기억이 있다.

저녁 시간이 어수선 했지만 잠자리에 든다고 집집마다 일찍 불이 꺼진 것 외에는 다른 기억이 없었다.

 

나의 기억은 고작 그런 것들이었다. 그런 소소한 일상을 살고 있었다.그런데 내가 알지 못하던 곳에서는 저런 일들이 일어 났던 것이다.

 

그리고 순간 머리를 치는 생각이 있었다. 내가 대학에 오지 않았으면 아마 더 오랜시간 동안 알지 못하는 일이었겠구나.

그다음 부터는 외면 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서점의 좁은 다락에 숨겨진 이념서와 금서들을 탐독하며 내가 알지 못했던 시대와 실체에 대해 알고자 했다.

그리고 유월항쟁이 일어 나던 때까지 데모를 하고, 그 후로도 해마다 돌아 오는 오월에는 술자리 끝에 눈물을 흘리며 광주에서 온 친구를 보며 그 한을 어떻게 견디냐고, 끌어 안기도 하며 젊은 시대를 흘렸다.

 그때는 자고 나면 분투신이 이루어 지던 때였으니 학생이 죽어 가는 걸 날마다 보던 때이기도 했다.

 

또, '타는 목마름'을 부르며 집회 해산을 하곤 했는데, 그 시인이 어느날 분신하는 이들을 두고,생명 경시 사상에 물들어 있는 죽음의 굿판 운운에 놀랍고도 배신감이 들었지만 워낙에 쁘락치가 많던 시절이어서 누가 아군이고 적군인지 모를 개와 늑대의 시대를 살아 내던 시절이라 변절이니 회색이니 기회주의니 하는 일로 누구를 몰아 부치지도 못할 만큼 지쳐 있었기도 했다.

그렇게 그 시절은 지나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전쟁 같던 시절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냥 전쟁 이기만 했던 시대가 이어져 온다.마무리도 마감도 없는 시절

카타르시스가 없는 우리의 역사, 승자의 노래가 없는 우리의 역사 안에서 끝 없이 되풀이 되는 폐자의 용서들...

 

그래서 나는 이 소설이 보기가 불편하다.

내가 보았던 사진 안에 교련복을 입은 어린 시민군이 동호였는지는 모르지만 이미 동호는 그 어린 시민군의 대표이니 그를 동호로 봐도 되지 않을까.

나보다 겨우 세살이 많은 그 어린 혁명군이 혁명을 깨우치기도 전에 피를 뿌렸고, 한강은 안개속에 서있는 동호를 그렸다.

나는 동호와 시민군들이 강 저편 안갯속에 서 있는 이유를 알 수 없다.

이미 역사가 되어버린 이들에게 희미한 실체에 뚜렷한 색의 옷을 입혀 우리 안에서 살아 가라고 하면 안되었던걸까.

 

저 역사가 신화로 살아 나는 날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