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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쓸쓸하고 아름다운, 남자 백석

October 26, 2016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탸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탸샤는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탸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를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탸샤를 생각하고

나탸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같은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탸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응응앙 울을 것이다.’ 

 

1938년 <여성>3월호

 

 

북방에서

 

아득한 옛날에 나는 떠났다.

부여를 숙신을 발해를 여진을 요를 금을

흥안령을 음산을 아무우르를 숭가리를

범과 사슴과 너구리를 배반하고

숭어와 메기와 개구리를 속이고 나는 떠났다.

 

나는 그때

자작나무와 이깔나무의 슬퍼하든 것을 기억한다.

갈대와 장풍의 붙드든 말도 잊지 않았다.

오로촌이 멧돌을 잡어 나를 잔치해 보내든 것도

쏠론이 십리길을 따러나와 울든 것도 잊지 않았다.

 

나는 그때

아모 이기지 못한 슬픔도 시름도 없이

다만 게을리 먼 앞대로 떠나 나왔다.

그리하여 따사한 햇귀에서 하이얀 옷을 입고

매끄러운 밥을 먹고 단샘을 마시고 낮잠을 잤다.

밤에는 먼 개소리에 놀라나고

아츰에는 지나가는 사람마다에게 절을 하면서도

나는 나의 부끄러움을 알지 못했다.

 

그동안 돌비는 깨어지고 많은 금은보화는 땅에 묻히고

가마귀도 긴 족보를 이루었는데

이리하여 또 아득한 새 옛날이 비롯하는 때

이제는 참으로 이기지 못한 슬픔과 시름에 쫓겨

나는 나의 옛 한울로 땅으로 - 나의 태반으로 돌아 왔으나

 

이미 해는 늘고 달은 파리하고 바람은 미치고

보래구름만 혼자 넋없이 떠도는데

 

아, 나의 조상은 형제는 일가친척은 정다운 이웃은

그리운 것은 사랑하는 것은 우러르는 것은

나의 자랑은 나의 힘은 없다 바람과 물과 같이 지나가고 없다.

 

- < 북방에서 > 백석(白石) - 1940년 7월 <문장>지

 

흰 바람벽이 있어

 

오늘 저녁 이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 간다

이 흰 바람벽에

희미한 십오촉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던지고

때글은 다 낡은 무명샤쯔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언 일인가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은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씻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늬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조 앉어 대구국을 끓여 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또 이즈막하야 어늬 사이엔가

이 흰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굴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어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 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쓰 잼과 도연명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1941년 4월 <문장>지

 

 

아름다운 시인이었다. 누구에게도 말없이 새김질하는 시였다.

 

머리에 손깍지 베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게 새김질하는 것이었다.

아내도 집도 다 없어지고

압록강 끄트머리

신의주 목수네 집 문간방에 들어

싸락눈 문창을 때리는 추운 날

 

다 가라앉아버린 마음 속 앙금

먼 산 뒷섶 바위섬에 따로 서서

어두워오는데

하이얀 눈 맞고 서 있는

할매나무 한 그루를 생각하고 있었다.

 

태어나서 자란 평안북도

말더듬이 인 듯

그 고장 말 아니면

다른 말은 몰라

여학교 영어교사를 아무리 해도

나는 말은 몰라

어쩌다 사랑하는 여자를 나타샤라고 불러보고는 

 

도대체 시인이란 유난히 우렁차거나

유난히 애절하거나

그것말고

이리도 이른 봄날의 가난으로 남은 잿빛인가

어스름인가

누구인듯

아니 달밤의 박꽃인 듯

차츰차츰 밝아오는 어둠 아닌가

한국시의 가슴속 진짜

 

몇십년 동안 없다가 열이레 열여드레 하현달로 떴다.

먹고 싶게

울며

먹고 싶게

 

- < 백석(白石) > 고은(高銀) - 

 

아름다웁던 시인 백석, 나약한 시대를 통과하는 긴 시어

 

백석의 시는 서너 단계의 형성 과정이 엿보인다.

고향, 어머니 음식, 그리고 오산고보를 중점으로 고향에서 포근하게 발전 되어진 시어를 가꾸던 때

그리고, 시집 사슴을 꾸리 던 때 통영과 여인에 부드럽고 높은 에너지를 받으면 온전히 더 깊어지고 고급화되는 시어를 구축한 때, 편집인으로 살며 풍부하게 확장 시키던 고급한 시어를 다루던 때....

자야를 만나 사랑하고,해어지며 썼던 최고의 순도 높은 연애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그가 시인이어서 가장 빛이 나던 시절의 시어들이다. 조선일보에서 일하며 수많은 문인들과 교류하고, 조선을 여행하며 난에 대한 연정으로 한껏 감성이 돋보이던 시절의 시어들은 유랑객처럼 바람의 향이 물씬 풍긴다. 그리고 다시 고향에 돌아와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그리고 자야를 만나 사랑을 불태우고, 반복되는 결혼을 하면서 백석은 순결한 사랑이 세상에는 존재함을 나타샤를 통해 증명한다. 러시아의 설원에 살 것같은 나타샤와 눈을 맞으며 흰 당나귀를 타고 순결한 땅으로 숨어 들자 말하는 백석, 그에게 이 시절 사랑은 온통 하얀색이었다.

그리고 고향말을 버리라는  일제를 피해 만주로 들어가 부끄럽고 게으름을 고백하던 절망의 시어.....이 시절의 시인에게는 허무와 절망과 강렬한 페이소스에 갇힌 기기가 아닐까? 극강의 비장미를 보여주는 시기이다.

 

그리고 그 다음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백석이 보여주던 비장미는 더욱 강렬하고 슬프다. <북방에서>와 <흰 바람벽이 있어>에서 처럼 지키지 못한 자는 절망과 부끄러움의 시어를 쓸 수 밖에 없음을 알려준다. 

아름다웁고 연약한 시인 백석에게, 나타샤와 흰 눈 만큼 겨레와 민족이, 그리고 살아 숨쉬는 고향 함경도의 어여뻐서 슬프고 나약한 사투리들이 그를 지배했는가.

그의 인생에는  나타샤와 시 밖에는 없어 보이는데... 하지만 그는 그의 시어를 지키기 위해 도망가 시를 쓸 지언정 시어를 포기하지 않은 시인이다.

 

나는 나타샤로 대변되는 그의 여성상이 이국의 느낌에 동경을 품은 한낱 조선의 남자다 싶으면서도 그 조선의 남자에게 언뜻 정절 같은 것도 엿 보인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 푹푹 눈이 내린다./나탸샤를 사랑은 하고/눈은 푹푹 날리고/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언제까지라도 눈이 내리면 나타샤를 떠울리며 소주를 마실 것같은 백석이 떠오른다.

나타샤를 생각하는데 보드카가 아니라 소주를 마시는 건 백석의 말끔한 성격 탓일 것이다. 그가 말끔하고 데면한 성격이 아니었으면, 자신의 시어를 지키려 만주까지 도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리하면 그의 절망이 아름답게 담긴 [북방에서] 같은 시는 아예 나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나는 이 세상에 [북방에서]라는 시가 있는 줄 모르고 살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부끄러움과 게으름이 절망의 다른 이름임을 몰랐을 것이다. 

그의 당나귀가....시적자아를 더 높은 이상 세계로 데려다 주는 매개를 잃어 버릴 수도 있었다. 당나귀를 지키기 위해, 몰래 짓는 개처럼 의기소침하게 그 시절을 통과하고 있었다. 당나귀처럼 나약한 동물을 보살피고 살펴보는 것 그래서 홀로 쓸쓸한듯하나 무엇으로 가득 차 있는 그걸 원했다.

하지만 그것으로도 충분치 않은 때가 왔다. 조선의 문인들이 다 친일로 돌아서고 징병을 독려하고 나서자 이 결벽증 심한 시인은 그냥 붓을 꺾었다. 조선의 글로 시를 쓰지 못하고 일제를 위해 선동을 써야하는 일은 치욕과 도를 넘은 부끄러움이었을 것이다.

이전의 자신은 시대를 방관하는 부끄러운 게으름뱅이 였다면, 조선의 글로 자신의 시어로 전쟁을 독려하는 글을 써야할지도 모르는 자신은 치욕과 두려움 이었을 것이다.

그가 견뎌 낸 시간은 조선의 독립이 오면 끝이 날것 같았지만... 백석은 더 긴 시긴 동안 시를 쓰지 못한다. 고향 근처에서 살고자 월남하지 않고 북한에 남게 된 백석은 이번엔 이데올로기의 혼돈 속에서 정체성을 지키지 못하였다....

그는 아름다웁고, 결벽증을 다소 가지고 있으면서 때론 유약하고 사랑과 열정을 태워 시어를 조합하는 모던보이였다. 그에게 계급문학과 이데올로기는 족쇄가 아니었을까?

부루주아를 경멸하고, 계급 투쟁을 고취시키기 위한 언어는 그가 갈고 닦은 시어에서 벗어 나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의 아름다웁던 시인 백석을 지킬 수 없었다. 시대의 혼돈이 시어에 내미는 잣대를 그는 받아 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나에게 백석은 나타샤와 당나귀 북방에서 흰 바람벽으로 남는다. 이 아름다웁던 시인에게 시어가 아름다워서 아플 수 있다는 걸 배웠다. 또한 시인의 절망이 무기력함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렇게 그 시인은 북한의 체재 속이서 마지막 미학주의자가 되었다. 그리곤 그의 시어는 사라졌다. 마지막 시인은 농부가 되어 전원의 생활을 했었다고 한다. 

 

그의 시어는 아름답고 때로는 쓸쓸하고, 고집이 있고, 모순된다. 설정적 아이러니를 담고 있어 기발하기도하다.그 멋부림이 연애를 잘하는 그 천성 과도 닮아 있어 뿌리칠 수 없다. 그는 그의 시어를 사랑하는 독자와 연애를 하는 듯하다.

 

쓸쓸하고, 높은 시적자아는 동주에게 옮겨온다. 백석의 쓸쓸함을 동경하고, 닮고 싶어한 시인 동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