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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내 친구의 이야기 -그는 어쨌든 살아 갈 것이고 . . .

August 12, 2016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십수년 전 -아마 십 사년쯤- 이고, 그때에 마당 구석에 수북히 흩어진 자잔한 석류꽃이 초여름 환하게 피어오르던 햇살 아래에서 토닥토닥 몸을 뒤집는 팝콘처럼 널려 있었다.

그 빛나는 여름 아래에서 본 그는 당연히 여늬 여자들 보다 더 고운 얼굴과 아름 다운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아, 남자도 아름 다울 수 있구나 범접하기 힘든 그 분위기는 두고두고 그를 생각 할때마다 가슴을 애리게 했다.
갓 스물이었던 그는 다리가 유달리 길고 몸이 가벼워 보였다.


나비야 청산 가자 범나비 너도 가자 
가다가 저물거든 꽃에 들어 자고가자 
꽃에서 푸대접하거든 잎에 잎에 들어 자고 가자. 

나 비 . . . . . . .그가 원하기만 한다면 그의 몸은 둥글게 말려서 공중에 뜰 것이고, 그 긴 다리와 긴 팔을 저어 앞으로 나아갈 수 도 분명 있을 것 같았다.

 

 부신 햇살 때문에 가는 눈을 뜬 채 나비를 떠올리는데 그는 정말로 국립 발레단에서 나비  춤을 추는 꿈을 꾸다가  발레를 전공한다고 했다.
"나는 늦게 발레를 시작했어 체형이 다 갖춰진 다음에 시작을 했지. 하지만 나는 정말 춤이 좋아. 남들 보다 높이 뛸 수도 있지. 그게 제일 마음에 들어. 강약중강약의 박자를 타고 드높이 도약을 하는데 어떻게 그렇게 아름다울 수 있지?"
그는 아름다움을 기형적으로 쫓는 아름다운 남자였다.
아름다움 어떤 찬사보다 황홀한 것임에 틀림없다.
가까이 볼 수 있는 사람에게 그것은 얼마나 큰 행운인가.

우리는 즐거웠지만 고통스러웠던 대학을 마치고 기능을 연마한 예술인이 되어 사회에 던져졌다.
그는 나비처럼 도약하는 기술을 배웠고, 나는 꽃의 이미지에 미친 그림쟁이였다.
하긴 꽃과 술 중에 어느 것에 더 미쳤었나는 하느님만이 아실 것이다.
그는 쉽사리 국립발레단에 들어갔다.
그리고, 사랑을 했다.
그가 사랑한 여자는 아마도 무척 예뻤을 것이다.
난생 처음 아름다운 여인과 사랑에 빠진 그.
봄의 간지러운 햇살을 쫓듯 황홀한 눈빛으로 아름다운 꽃을 향해 나비춤을 시작한 것이다.
그에게는 병원 원장을 지내시다 돌아가신 아버지, 유치원 원장이셨던 어머니 영화사를 운영하거나 의사인 형이 셋 있었다
다복하고 유복한 가정이었다.
그는 사랑에 빠져 세상의 시간에 환각을 걸고 싶어했지만 나를 위한 하루 한 두어 시간
의 배려를 잊지 않았다 
그에게 다른 친구나 동료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는 말을 참아내지 못하는 경향이 있었다. 
가령, 그는 문득 드는 느낌이나 생각들도 그때그때 나에게-그 외에 누가 있었을까-얘기를 해야했고 얘기를 못하면 심하게 짜증을 내곤 했으니까, 또 연애의 순간에는 얼마나 하고 싶고 확인 받고 싶은 일들이 많을 것인가.
우리는 두어 시간 정도-대개는 밤 11시쯤- 차를 마시거나 점멸 중인 도시 안으로 걸어 들어가거나  . . . . . 하면서 나는 그의 이야기를 끝없이 들어야했다.
가끔은 알 수 없는 기류가 내 몸을 감싸기도 했는데 그래도 참고 그의 이야기를 들어야했다.

그러다 문득 그가 없어졌다.
그는 사랑하는 여자와의 결혼을 위해 상견례를 하고 결혼식 날을 잡고 청첩장을 돌리고 살집을 구해 도배를 마쳐 놓았다.
그는 오디오는 그가 준비를 하기로 했다-그에게 오디오는 아주 중요한 부분이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그것뿐이었으므로 나머지는 여자의 취향에 맡겼다.
그리고 그가 없어졌다.
당연히 약혼녀는 영화 기획사를 운영하고 있는 그나마 형들 중에 제일 친한 셋째형을 찾았고, 셋째형은 당연히 또 나를 찾았다.
하지만 그는 나도 모르는 곳에 들어가 버린 모양인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그는 자신의 결혼을 파하고, 한달  뒤에 아무 일도 없었던 얼굴로 나를 찾아왔다.

"그녀가 친구들과 동반 모임이 있었던 모양이야. 그런데 그게 동반 모임인걸 알았지 며칠 동안 아무 말이 없는 거야 모임 전날까지 어떤 말도 없더라구. 그녀에겐 내가 가도 그만 안가도 그만 이었던 거지. 모임의 자리에 동반을 하거나 혼자 가거나가 아니었단 말야 나하고 같이 가든지 말든지였던 거지, 내가 발레를 하는 것이 부끄러운가 하루를 꼬박 생각 했어 평범한 직업이 아니니 그럴 수 도 있겠다 고 생각하려고도 했고. 그러다가 결론을 내렸지. 그녀는 나.와. 결혼을 하든지 말든지였던 거라구 그녀가 찾아왔었어. 우리는 끝이라고 말했지 믿지 못하겠다구 하드라 하긴 세상 어느 누가 갑자기 일방적으로 취소된 결혼을 유쾌하게 받아들이겠어? 그만 가보라구 했어. 우린 너무 맞지 않는 옷이 될거라구했지 널 만족시킬 능력이 없다구 말이야. 내 첫사랑이 총총히 사라졌지 호숫가에 끼인 안개를 일렁이면서 말이야 . . . . 오.리.무.중 . . . . 나중에는 안개에 가려 안보이드라 웃기지?"

아무튼 그는 그렇게 첫사랑에 실패를 했다.
가슴 아픈 일이긴 하지만,
 그의 폐쇄적 감성이 오랜 시간 첫사랑의 아픔을 기억 할 것이긴 하지만,
다른 사람의 경우대로 시간의 힘을 빌어 이겨 낼 있으리라.

그 후론 나는 여직까지 그가 여자를 사랑한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그렇게 그녀와 헤어지고 그녀는 다른 사람과  결혼을 했다고 했다.
삼 사년이 지난 언제쯤인가 불현듯 그녀의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 그리고는 그녀의 목소리가 불행했다고한다.
"내 존재를 남편이 안다고 하드라 집으로 전화를 해보고 싶어."
"늬들이 보통 사이가 아니었잖아. 지금은 아니라고들 하지만 누구든지 오해 할 수 있는거야. 니 말대로 볼행해 보였다고쳐. 니가 끼어들면 그여자는 더 불행해지는건 아닐까?"
"아니, 모르겠어 어쨌든 통화를 해야해 꼭"
그는 그녀의 남편과 통화를 했다.
싸늘한 목소리로 그녀의 남편이 그녀의 부재를 알렸다고했다. 그리고는 끝이었다.
더 이상 그녀의 목소리에 대해 집착을 하지  않았고 그녀의 불행 따위에서도 벗어났다.

그맘때쯤이었을 것이다.
그가 사고를 당해서 더 이상 춤을 출 수 없게 되었다.
나는 그에게 심심한 위로와 쾌유를 빌었다. 더 좋은 직업을 구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그는 유복하고 다복한 집안의 귀여운 막내가 아닌가.
그는 내 바램대로 빠르게 회복을 했다. 
부자연스럽게 라도 걸어 다닐 수 있을 때쯤 나는 호주로 떠났다

단순히 관광이 목적이었지만 어쩐지 나는 쉽게 돌아오지 못하리란 걸 알았다.
그곳은 서른이 넘어 영어가 서툰 동양 여자가 살기에는 지독히도 외로운 땅이었다 
가끔은 낯선 이국 땅에서 존재적 상실감으로 시들시들 말라갔지만 어떻게든 적응해갔다.
시드니 외곽에 집을 구했고 밤이면 건물 청소를 나갔다.
나는 백호주의에 젖어있고 어리석은 소영웅주의에 사로잡힌 그들 중 누군가와 언쟁이 붙으면 영어를 못 알아 듣는척하며 한국말로 욕을 퍼부었다.
그렇게 한달 두달을 보내고 서서히 그 나라에 적응을해갔다.
그 나라는 말보다 여자가 더 살이 찌는 음의 기운이 강한 나라라고 했다.
그렇게 중력이 강하고 음기가 뻗쳐 조금씩 살이 찌기 시작하는 것으로 그 땅을 배워 갈 무렵이었다.
어떻게든 빨리 적응하기 위해 나는 그곳에 자리잡은 한국 사람들을 멀리했다.
한국 사람들은 그들과 정서가 비슷하고 거짓말이 자유자재로 통하는 같은 한국 사람들에게서 악착같이 돈을 벌었다.
낯선 나라에서 살아 남아야하는 그들에게 민족 정서를 강요하는 것은 이타심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다국적 인종들을 끌어 모았다.
인도 친구와 필리핀 친구 일본 친구 둘. 그래도 그 친구들은 마늘의 매력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낯선 땅에서 함께 울어 줄 친구의 기준은  그 정도면 충분하다.
오감 중 하나만 일치된다면 속을 까보여도 무방할 것이다.

그 즈음이었다.
나처럼 마늘을 좋아하는 친구들과 사귀어 바비큐 파티를 하고 공원을 조깅하고 새벽 청소를 그만두고 옷가게 매니저로 직업을 옮겼을 무렵이었다.
지구 반대편에 있다는 걸 마음놓고 즐기려고 할 무렵이었다.

그의 형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가 동맥을 끊었다고 했다.
나는 아주 멀리서 절친했던 친구의 사고를 듣고 걱정과 불안과 그리움과 분노와 그리고, 한꺼번에 폭발해서 참을 수 없게 되어버린 노스텔지어.
그래서 나는 떠나온 지 1년 만에 비행기를 탔다.
정말로 그와 절친했고, 그의  유서에 나의 이름이 떠올랐다면 그렇게 해야했으므로 . . . .
그는 이미 정신 병동에 옮겨진 상태였다.
그는 두서너 개의 긴 병목들을 가지고 있었고 그 중 하나가 13세의 우울증이라고 했다.
13세가 느끼는 우울증이 병이 된단다, 세상에.
그가 앓고 있는 병이 백혈병이거나  혹은 암이라도 이것보다는  괞찮은거 아닐까?
나는 그가 지닌 생소한 병목 때문에 그의 상태를 짐작할 수 없어 너무나 망연하고 안타까웠다.
13세가 느끼는 우울증. 나의 13세에 우울증은 어떠했었나?
죽고 싶을 만큼 심각했었나?
그런 병을 앓고 있는 건 암을 앓고 있는 것 보다 더 막연해서 더 무서운 병일 수 있다.
그건 그런 동류의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을 본적이 없고, 그래서 그 병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전혀 상식이 없기 때문이다.
그 병목 외에 서너 개나 더 되는 병목들이 한꺼번에 나타나는지 시간을 두고 하나씩 나타나는지도 모르고 있다.
그런데 그는 아는지 모르는지 희귀하고도 종류도 많은 병목을 달고 격리 수용되어 있었다.
나는 베테블루의 베아트리체 달을 떠올리고 있었다.
나에게는 가학성이나 자학성을 구별할 만큼의 지식이 없다.
그저 비정상적 상태로 이해할 뿐이니 영화나 현실이 애처로울 만큼 구별이 무딘 것이지.

나는 그의 뇌에 박혀 있을 형체도 없고 움직임만 있을 뿐인 벌레를 생각한다.
그 놈도 분명 잠을 잘 때가 있을 것이다.
하루에 두 번쯤.
어쩌면 동면하는 변온동물처럼 겨울잠을 잘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선지 어쩐지 그는 내가 다시 돌아오고 두어 달 뒤에 퇴원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나는 생활에 바빠 그를 잊었고 . . . . .
가끔 정신과 병력을 주렁주렁 달고 그가 사회인으로 정상적 삶-한 달에 한번 월급을 받고 그러기 위해서는 일을 하고 가끔 회식에 참석을 하고 어쩌다 마음이 동해 섹스를 하고 그러다가 불가항력적 사랑에 빠지고-을 살 수 있을까? 생각했다.
그에게 그렇게 살아야지 하는 존재 의지가 있을까?
만약 그렇더라도 우리 사회에 그런 아량이 있을 것인가?
토막토막 생각했다.
그러면서 잘 살아 주길  . . . . . .진심으로 걱정했다.

나는 늘지 않는 영어와 씨름하고, 일을 하고, 친구를 끌어 모으며 이제는 평이해진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한국인 이혼녀 하나는 소위 엘리트만 모인다는 바에서 작정을 하고 죽치고 서성거리다가 호주인 백만장자 변호사를 만나 결혼한 이야기를 성공담처럼 듣기도 하고, 평범하고 낯가림 심한 한국 노인네 한 분이 딸네와 싸우고 공원에 앉아 있다가 호주인 노신사의 친절을 받았다는 얘기도 들렸다.
그 노신사는 아시아계가 분명한데 어느 나라 사람인지 말이 통하지 않아 식품점에를 갔더니 그 할머니가 깍두기와 햇반을 집었다고 한다.
그리고 며칠 더 친절을 배풀 요량으로 집에 모시고 왔는데 그 할머니가 지저분한 건 도저히 볼 수가 없다는 듯 구석구석 깨끗이 청소를 하고 있는 바람에 할아버지가 새로운 감정을 느꼈다나.
할머니야 고마움의 표시 일 수도 있을 것이고 그 연세 분들이 그러하시듯 몸에 벤 부지런함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여하튼 그리하여 두 분은 결혼을 하고 나중에 알고 보니 그 할아버지도 백만장자였다는 . . . .
몇 종류의 얘기 꺼리들이 생활고에 지친 유학생들이나 가난한 이민자들 사이에 부풀고 부풀어서 겨울밤  안개처럼 떠돌아 다녔다.
보상심리 일지도 모른다.
나에게도 언젠가 그런 일들이 벼락처럼 갑자기 찾아와 이 나라에 상류 계층으로 눌러 앉을 수 있기를 . .. .  .
어딜 가나 가난과 외로움에 지친 사람들 투성이다.
가난과도 친구 할 수 있을 만큼 많은 친구들을 만들어 놓고 그들과 다른 나를 들여다보고 있을 때.
그가 이 곳을 찾아왔다.
초점이 맞질 않는 눈과 허공을 배회하는 다리를 하고서 
그가 도착하기 이틀 전쯤 그의 형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정말 면목이 아닙니다..  짐처럼 부려 놓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소포 하나 보냅니다. 이 물건이 당신에게 가길 너무나 간절히 원하는군요. 이번에는 약을 먹었습니다. 낯선 바람 속에서 잠시만 거두어 주십시오"

나는 낯선 땅에서 다만 가까이 지내던 친구 하나 만난다고 생각할 수가 없었다.
한달 한달 가까스로 비자를 연장하며 사는 내가 환자의 보호자가 된 것이다.


 . . . . . . . . . . . . . . . .

그의 뇌 속에 자리잡고 춤을 추는지 짝짓기를 하는지 도통 알 수 없는 벌레 하나를 본다.
그 놈은 며칠 째 잠잠 하다가 가끔씩 그것도 주로 밤 시간에 활동을 하는 것 같다.
그 놈이 활동을 하는 전조를 느낀다.
그럴 때면 그는 우선 눈에 힘을 푼다.
그의 시선은 나를 향해 있지만, 그는 실상 그의 뇌 속에서 춤을 추는 그 벌레의 춤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밤새 열반씩은 어떤 핑계를 대더라도 그의 방문을 열어야한다.
나는 이 땅에서 나밖에는 할 사람이 없는 그 일을 절대로 하고 싶지가 않다.
그의 시체를 치우는 일.
그리고 나는 서서히 지쳐갔다.
우선은 병에 지쳤고 그리고, 그와 친구라는 것으로부터도 지쳤다.
나는 그를 어떻게든 되돌려 보내기로 결심했다.
그가 나아서 자기 발로 돌아가든지.
것도 아니면 짐에다 싸잡아 보내 버리든지
나는 그에게 최대한 결연하게 맞서기로 했다.
우선은 그를 몰아 부쳤다.
그에게 집안 일을 시키고, 시장을 봐오게 했다.
그는 사람이 많은 곳을 싫어하고.-대인 공포증도 하나의 병목이었을 것이다-낯선 곳에 혼자 가는 걸 두려워했으며 영어에 능숙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에게 명령을 했고 그가 실수를 하면 악다구니를 써댔다.
시장도 하나 못 보는 너는 아주 쓸모 없는 인간이라고 왜 재수 없이 두 번씩이나 죽는 걸 실패했냐고 했다."씨발놈"이렇게 덧붙였다.
" 넌 나와 오늘 사람들을 만나러 가야해. 가서 네 눈으로 똑똑히 보길 바래. 그 사람들이 얼마나 열심히 여기서 살아 남기를 원하는지, 넌 나약한 병에 걸려있지. 도대체 숨을 데가 어디 있다고 그런 더러운 병에 걸린거지? 이 낯선 나라에서 변기에 머리 쳐 박힌 체 늘어져 있는 니 시체를 우리가 치워 주길 바래? 이 개자식아아! 죽고 싶단 생각말고 니가 열심히 한게 도대체 뭐가 있니? "
나는 출근을 하고 나면 낮 시간 동안  그에게 일을 시켰다.
나는 매일 그가 대여섯 시간 동안 쉬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을 만들었다.
집안을 돌보게 하고, 지붕을 고치게 했으며 펜스를 칠하게 하고 정원 가위로 잔디를 깎게 했다.
그 집은 시드니 외곽에 자리잡은 오두막처럼 생긴 집이었다.
집은 낡았고 손볼 곳은 아주 많았다.
그렇게 작은 지붕에 올라타고 앉아 망치질을 하거나 페인트칠을 하면서 그에게 늘러 붙어 있는 고소 공포의 벌레가 사라져 주지 않았을까?
지붕이 무섭다는 얘기를 하지 않는 걸로 봐서 . . . .
그 곳의 여름 한낮은 40도를 육박한다 
많은 사람들이 실신을 했지만, 나는 내가 없는 동안에 그가 실신을 하건 더위로 탈진을 하건 탈수 현상을 일으키건 내가 들어갔을 때 살아 있으면   모른척했다.
차라리 지금도 죽을  것이라면 그런 사고사이길 바랬다.

낮 시간동안에 지친 그를 나는 일주일에 두 서너 번씩 친구들이 하는 밤 파티에 끌고 다니면서 잠도 재우지 않았다.
토마토를 따서 호주 일주를 하는 친구와 피망을 따는 친구와 접시를 닦는 친구가 하는 얘기를 그가 듣기를 원했다 
세상 사람들 전부가 의사나 무용가는 아니지, 나비춤을 출 수 없다고 뇌 속에다가 벌레를 키우면서 춤을 추게 만들지는 않지.
더더욱 그를 폭발물처럼 대하며 숨을 크게 쉬지도 못하는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니라는 걸 나는 필사적으로 알려 줘야 했다.
세상은 그러고 살기에는 너무 빨리 돌아가서 잠깐 숨돌리는 사이에 이미 그렇게 애쓰지 않더라도 죽음이 성큼 다가와 주질 않는가.
만약 내가 원하는 데로 그가 좀 더 높은 곳에서 세상을 둘러본다면 어떤 이유를 달더라도 밥을 먹고 숨을 쉬는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만 하늘을 보고 날씨와 경제와 환경 따위를 걱정 하지 않는 다는 걸 깨달았다면 그것이 얼마나 공허하며 비참한 일인지 그 쉬운 일도 못하는 그 자신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 . . . . . 


그리고 그는 얼마 후 한국으로 돌아갔다.
"뇌 안정제 50알을 털어 넣었어. 포도주에다가 그것까지는 멋있었는데. 순간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속이 많이 쓰리겠구나 그래서 겔포스를 먹었지. 그 것 때문에 흡수가 늦어져 죽지 못했나 싶어. 니가 시키는 일이 힘들어서가 아니야. 이젠 여기서도 있을 만큼 있었다 싶어.
그리고 너무 새까맣게 탔잖아"
그리고 그는 옷을 다 벗었다.
사실 팬티 자국만 제외하고는 너무도 새까맣게 타서 그는 인도 어디쯤에서 온 사람이라고 해도 그대로 믿었을 것 같았다.
그제서야 나는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그가 이 곳에 온지 백십여일 죽어라고 햇볕을 쬔거 밖에는 없는 것이 된 것 같았다.
"아마도 이 집을 오래 기억 할 거야, 내 손 안간 곳이 없잖아. 그리고 너도 많이 생각 날거야. 엄마 말고 여자랑 둘이서 이렇게 오래 살아 본 거 처음이다."
내가 그를 있는 그대로 기억해 주길 원했는지
그는 알몸으로 오래 있었다.
나는 부끄러운 그의 남근을 한참 쳐다보았다.

그는 죽는걸 포기했는지, 아니면 여기서 죽을 수는 없어서 그랬는지 
하지만 이것이 마지막이라고 해도 나는 그를 그가 원하는 데로 있는 그대로 오래 기억 할 것 같았다. 
아마 그의 장례식에 간다면 허공을  보며 실패한 마지막 죽음을 떠올리던 그의 빈 눈과 벗었지만 하얀 팬티를 걸친 것 같이 새까맣게 타버린 그의 아름다운 몸이 어쩔 수 없이 떠오르겠구나 했다.
그는 조용히 떠나갔다.
그가 너무도 정상적이면서도 드라마의 반전처럼 사라지자, 나에게 한번도 남자인적이 없었던 그를 아주 많이 사랑하고 있음을 알았다.
진심으로, 꼭 살아 있었으면 . . . . . .했다.


그를 보내고 나는 자주  심하게 앓았다.
그가 떠나간  하늘에서 불어온 병인 것도 같고, 그가 가면서 떨어뜨린 몇 마리 벌레들이 나를 원망하느라 그런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오래 자주 앓았고 열심히 일을 할 수 없어 생활이 말이 아닌 상태가 되었다.
어느 날 통장에는 단 4불만 남아 있었다.
당연히 비자를 연장시킬 수 없었고.
나도 이제는 돌아가야 할 것 같았다.
돌아가서 지친 이국 생활을 떨치고 엄마가 해주시는 잡채를 먹으며 설사가 나도록 매운 김치를 포식하고, 어떻게든 살아갈 방법을 궁리해야지.
일 년여가 지났지만 그는 아직 살아 있었다.
나는 그에게 한국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얘기했다.
불현듯 정말 아무나 하고 라도 결혼이 하고 싶어졌다고.
하지만 호주 인은 아니라고 했다.
그래서 한국에 가서 남편 감을 찾아 결혼을 목적으로 진지하고 계산된 연애를 할 것이라고 했다.
집으로 돌아간다는 얘기를 들은 후 그는 하루에도 두세 차례 씩 전화를 걸어왔다.
집은 언제 까지 비워 준다고 했느냐, 비행기 표는 바꿨느냐, 직장은 어떻게 할 것이냐 오늘 이라도 서둘러 얘기를 해야 예의가 아니겠느냐 . . . . .
그제껏 살아있어주는게-나는 그가 완전히 괜찮은지 어떤지 몰랐으므로-너무 고마워서 나는 그가 시키는데로 서둘러 정리를 했다.
나는 3년의 호주 생활을 그렇게 정리를 했다.
맑고 화사한 태양과 사막에 부는 달짝지근한 바람과 공원과 골드 코스트와 거리의 담배가 아주 많이 그리울 것이다.
하지만 나의 삼십대를 이 곳 사막에 가루로 덧뿌릴수는 없지 않은가.
이제는 세상에다 질경이처럼 뿌리를 내려 억척스런 한국의 중년 여인네가 되어야하지 않을까.
서른 몇 살 가난한 독신녀에게 얼마만큼의 정체성이 허락되는지.
한국 사람들과 악다구니를 하고 묘한 뉘앙스가 만들어내는 유머에 눈물 흘리며 웃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참을 수 가 없어졌다.

나는 한국으로 돌아와 예전의 직장으로 돌아갔다.
자리만 옮겨진 몇몇 동료들을 보면서 어쩌면 시간은 머물러 있고 공간만 끼어 든 건 아닌가.
어쩌면 시간의 옷을 입고 변화된 게 이렇게 없을 수가 있나.
단지 2-3년의 시간은 인간들이 심사숙고해서 성숙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에는 턱없이 모자라는 것인가.

몇 개월을 맑은 햇살을 그리워하며 또 느긋이 적응을 하고 있었다.
간간이 그와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그는 셋째형이 운영하는 영화 기획사에 다니고 있었다.
그곳에서 만들었다는 영화를 보라고 밤낮 없이 사람을 몰아세우기도 했다.

"어떻게 지낼 만 하냐? 호주 있을 때 보다 더 통화하기가 힘든 것 같다. 왜 전화를 안 받아서 서른 통씩 전화하다가 숨 넘어 갈 뻔하게 만드냐?"
"넌 똥누면서도 전화 받냐? 나는 화장실에서는 전화 안 받어 . 전화 안 받으면 똥누고 있다고 생각해. 스토커처럼 전화를 그렇게 싸가지 없이 해대냐??"
"네가 알다시피 내가 친구가 없잖냐."
"친구를 만들어. 취미 생활을 하든지 레저를 즐기든지"
"응. 안 그래도 운동 두 가지에 레저 동호회 몇 군데에 여가시간 활용하는데 짬이 없다 . 하도 타이트하게 돌아가서 말이지 .스쿠버도 한다 산호섬에 다이빙 갈거다 그래서 적금도 세 개씩 들었잖어. 내가 친구가 있어서 술 마시는데 돈을 쓰겠냐 연애를 해서 꽃값이 들어가겠냐. 예의바르고 반듯해서 불우 이웃을 돕겠냐. 돈 모으는 거 그거 은근히 재미있다 너."
"좋겠다 나는 거지라는 거지. 오나가나 나는 왜 돈이 없냐?"
'니가 거지라는 걸 비관 할 시간이 있으면 나처럼 알뜰 경제 생활을 해라 좀 있으면 나는 아주 부자가 될 것이야 하하하"

어쩌면 그에게 처음부터 벌레라는 놈은 존재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는 처음부터 나비춤을 추는 게 꿈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그는 나비춤을 출 수 없어 동맥을 끊거나 약을 털어 넣은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는 사는데 중요한 건 꿈이 아닌지도 모른다는 걸 달콤하고 환한 햇살아래에 눈부시게 서서 새까맣게 몸을 태우면서  깨달은 것인지도 알 수 없다.
그것도 아니라면 그는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