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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은희경- 새의 선물

August 12, 2016

열두 살 영악한 시선으로 세상 보기와....1969년의 시대적 은유.

내가 처음으로 사람이 가진 권력에 대해 무한 두려움을 느낀 대상은 군인이다.

유신 헌법이 태동하는 시기에, 혼돈과 억압이 조용히 일어나는 시절.

그와는 전혀 상관이 없이 일상적인 삶이 아지랑이처럼 일어나기도 하고 그와 떨어지지 않는 곳에서는 시대의 혼돈에 얽혀드는 삶도 있다.

 

 이 소설에서 화자인 진희는 스토리텔러로써의 역할에 아주 충실하다. 인간은 누구나 보여지는 나와 바라보는 나로 나눌줄 안다. 나도 마찬가지다. 나의 주체를 바로 세우고.....나를 객관화 시키는 일. 하고 보면 쉬운 일이다.

 

수많은 인간 군상들이 예전의 주말 드라마 옥이 이모처럼 어수선하고 과장되고, 턱없이 심각하게 전개 되지만, 이 소설에는 인간의 모든 감정이 담겨 있다. 

가볍되, 결여되지 않고, 영악하지만, 부풀지않고, ....

진희는 이 곳에서 충분히 성장한다. 

 

이모의 사랑을 통해 숨어 있던 여성성에 대해 깨닫고, 장군이 엄마를 통해 어른이 되어가는 것은 통속성과 이기심을 본능처럼 습득하는 일이라는 것과, 가끔 어른의 일에는 경자 이모에게서 처럼  배신이 일어 날 때도 있고 제때 용서하고 화해하지 않으면 영원히 기회가 없을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이건 바라보는 내가 바라보며 분석하며 얻은 교육적 산물이다. 내가 가진 사랑에 대한 근원이 허상이었다는 걸 깨달은 뒤, 세상에 속는 일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이상과 이대올로기가 사라진 시대, 범람하는 지성적 허영들에서 너도 나도 현대인임을 자처하며, 쏟아지는 문화적 어젠다에서 60년대식 사고와 90년대식 사고에 차이가 있나? 

60년대가 태동과 희망에 세뇌되는 시대였다면, 90년대는 이념과 이데올로기에 지친 환멸을 겪는 시대가 아닐까

 

약속이나하듯이 80년대와 단절한 90년대의 시대구분은 70년대의 긴 터널을 위한 60년대식 숨고르기와 닮아 있다.

69년 3선 개헌으로 시작되는 70년대의 유신 정권은 우리 현대사에 있어 가장 암흑한 시대였다.

두세명이 모여 이야기를 나눌 때도 감시를 받아야했으며, 국회의 해산을 겪었고, 수없이 많은 간첩들이 잡히던 시절, 정권은 긴 독재로 들어 갔으며, 산업화를 빌미로 수없이 많은 도시 빈민들의 내몰림과열악한 인권이 생산성에서 밀린 노동자들이 양산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끝에는 광주사태가 기다리고 있다는걸 1969년에는 몰랐다. 그래서.....

 

그 시절, 서막이기 전 아주 짧은 마지막 평화의 시대가 도래했다.  사랑을 쫓아 눈치껏 게으름을 피우고 일탈을 꿈꾸던 우리 이모들과, 교육에 목숨 거는 장남들, 순결교육을 받아 들인 마지막 세대, 가부장적 남편들이 늦은 귀가에도 아랫목에  묻어둔 밥 그릇으로라도 그나마 대접 받은 세대.

그리고 해부하듯이 찬찬히 삶을 인생을 들여다 볼 기회, 농담처럼 주고 받으며 타인의 삶도 유쾌하게 간섭해도 어색하지 않은 공동체를 인정했던 시절.

김승옥이 얘기하던 60년대식이라는 것도, 서울 1964년 겨울도  이와 같다.

그 시절만의 촌스럽고, 위트있고, 두런두런 걱정하며, 아름다움을 동경하며, 순박함으로 하얗던 빛이 있다. 그리고 그 시절만의 낭만적 지성도 있었다.

 

이 소설애서 은희경의 말처럼 어이없는 우연이 삶을 이끌어 간다. 

60년대를 거쳐, 7,80년대를 살아 남아 90년 대의 허무에 도달하는 동안 생장을 지나 소멸의 단계로 들어 가는 인생에 무수히 많은 우연들이 이끄는대로 살아지는 삶. 

 

그래서, 삶은 농담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