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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은희경 태연한 인생

August 12, 2016

패턴과 이데올로기....정형화되고 도식화된 소설가의 태연한 변명

글을 쓰는 사람은 가난해야하고, 열정이 있어야하고, 저항해야하고, 자본을 비웃어 줄 수 있어야 하고, 물질에 대해 시니컬해야한다는 일반적인 도식이 있었어.

그걸 한눈에 이론화 시키며 자신에게는 그 어떤 것도 당당한 요셉이 주인공이야. 

그건 왜겠어? 작가는 그런 부채의식에서 벗어나고 싶은거지.

 

가난과 열정이 등을 맞대던 시절....재능과 좌절이, 시대와 저항이 역사와 부채가 늘 함께이 던 시절.

천민 자본주의에 물들까봐 자본에 길들여진 배부른 돼지를 경계하던 순수문학의 고고한 이상은 이미 해묵은 이데올로기가 되었어.

이제 문학은 나름의 정형화된 패턴에 따라 길을 가고 있는 것이야.

 

줄거리가 사라지고 이미지만 남은 외로운 서사들이 소설이 되어가는거지

이건 90년대를 준비 없이 갑자기 맞아들인 때문이야. 우리는 군부가, 독재가 우리를 가두던 이분법적 흑백 이데올로기가 그렇게 빨리 끝날 줄 몰랐던 거지.

페레스트로이카로 사회주의 이데올로기가 사라져 우왕좌왕하던 우리 문학에 좀 더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로웠던 일본의 저력이 끼어 들면서...우리는 사유하고 존재하는 모든 것에 시니컬해지기 시작했어.

이전 시대에서 문학의 의미는 리얼리티에 충실하며 서사구조를 잘 따른 시대상의 반영. 같은 거였는데, 시대상이 갑자기 없어지면서 대신에 인간내면을 찾기 시작하는거야. 

그러니 줄거리는 없고 이미지가, 서사 대신에 묘사가 문학의 의미나 가치, 그런 자리를 대신하게 되는거지

 

다시한번 느낀 건  작가 은희경의 장점이자 시그니처가 될수도 있을 텐데, 가히 제목이 탁월하다는거야.

소설을 읽을 때면 마지막장을 덮어도 애매모호할 때가 있거든,그때 제목을 떠올려 보면 비로소 "아!" 하게될 때가 있지?

이 소설도 마찬가지야. 참 태연한 인생이지.

요셉은 자신의 허세에 나약한 감수성을 숨기고,태연하게 세상에 자신을 설명하고, 이안은 부족한 재능보다 더 뛰어난 열등감을 숨기고 태연하게 대안을 찾고, 류가 보는 어머니는 아버지와 결혼하고, 이혼을 하기까지 받아들이는 자신의 시간에 인생에 태연하고, 아버지는 열정처럼 만난 사랑에 또 태연해.

 

은희경은 이런 말이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인생은 안에서 보나 밖에서 보나 태연하게 지나가는 거야. 그러니 상처 입지마. 사랑과 보상이 형태를 달리한 한 얼굴이라는걸 믿지 않기 때문에 인생의 다툼이 생기는 거지. 

자신의 인생을 객관화 시켜보지 못하면 집착하고, 평생 변명을 하면서 사는거지. 자기 자신한테...

 

이 소설을 읽고, 나의 인생도, 객관화 시켜서 도식화하고 정형화 해서 태연하게 늘어 놓으면, 내용은 숨고 형식만 남는 이론 같은게 될 수도 있을까?

하긴 이론 조차 되지 못하는 인생일 수도 있는데 뭐...

삶의 매혹은 찰나에 지나가는 봄빛 일 수도 있는거지...사랑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