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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은희경- 비밀과 거짓말

August 12, 2016

우리 아버지들의 성장과 소멸은 역사와 함께 해. 일제 말기에 태어나 한국 전쟁을 겪고, 가난이 모든 행위의  이유가 되고 이념이 되고, 정체성이 되고, 그래서 가난하지 말자가 가장 큰 교육 목표가 되었던 시대를 살아 내면서, 청년기에는 4.19와 5.16을 장년기에는 유신을 노년기에는 군부와 IMF를 차례로 맞이한 세대.

 

우리의 아버지들의 역사에는 어쩔수 없이 짧고 굴곡진 우리의 근현대사가 함께해.

산업발전이라든가, 관치금융이라든가, 와이로라든가, 부실공사라든가..

산업화 시대에 눈부신 성장을 이루어 낸 주역들이지만, 산업화 과정에서 발생된 수많은 희생의 주인공이기도 했으니까.

우리 아버지들의 젊음은 그것들과 함께했어. 그 길지 않은 시간동안 대립과 경쟁 그 안에서 집의 역사를 지키기 위한 아버지들의 고군분투....

 

때로는 산업의 역군이기도 했고, 이주 도시민의 노동자 이기도 했으며, 간혹 이도저도 아닌 아비였다면 개발의 붐을 타고 쏟아지는 공사장 귀퉁이에서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건물을 보고 있었거나, 고금리 정책 속에서 장롱속의 돈들이 은행으로 향하고 그 돈들을 개발과 산업에 쏟아 붓던 관치금융 시대에 사업을 이어간 아비 였다면,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수만가지 정치적 상황에 맞딱드려 정치적 판단을 해야하는 그 다반사의 일들에서 자식들의 입성과 배움을 걱정하며 노심초사하는 아버지였겠지.

 

그러한 역사 곳곳에 끼어있는 태동의 현대사.그런 아버지 세대의 희생과 부조리를 딛고 아들, 혹은 딸들은 정의와 민주를 외치면서...폭력의 시대와 마음껏 싸웠던 것이지.

여기도 두 아들이 있어. 아버지를, 가족을 겉도는 얼음 같은 아들과 불을 삼켜,바람의 신탁에 몸을 맞기고 말발굽을 치고 달려가 파도가 울음우는 벼랑위에 가까스로 멈춰 선 안타까운 정염의 시간을 가진 아들...

나는 사람의 피에는 색깔이 있다고 생각해. 

선동가나 혁명가의 주체할 수 없이 펄떡이는 피

먼 곳을 보면 가슴이 내려 앉듯 차분해지는 떠나야하는 자의 유랑의 피

평생을 떠돌고, 고향집 대문쪽을 보고 한밤 머리를 뉘여도....돌아가지 못하고 떠도는 자의 역마가 흐르는 피.

 

 

  이 이야기는 우라들 아버지의 이야기야. 젖은 신발을 끌고 거친 세상을 헤매다 돌아와 뒤척이는 잠 중에도 밭은 기침으로 들썩이는 잠결 조차 곱지 못한 우리 아버지의 이야기.

그 안에는 이데올로기도 있고, 부정한 정치도 있고, 불길처럼 변화하는 세상도 있고, 외지고 낙후한 고향에는 누구는 감추고 누구는 수군거리는 비밀들이 있어.

아들들에게는 아버지의 젊은 날과 마주하고, 시간을 돌아 과거로 회귀해 마주선 비밀이 있지.

 

그 비밀을 가진 아버지는 떠났던 내 아들들과 내 집안의 역사와 화해 시키려는 고집도 있다. 그 아버지가 이르지. 나의 세대와 너희의 세대가 이루어 내는 화해와 약속.

그것은 차마 버리지 못하는 숙명이라고...

 

예전에 한번 훑었던 책을 다시 손에 들면서 어떤 책이었는지 도통 생각이 나지 않더니,책장을 두어장 넘기자 주리라는 기발한 이름이 나온다는 것과 소설 곳곳에 영화가 복선처럼 장치가 되어 있었다는 생각이 어렴풋 났어.

그런데 이 영화 같은 소설은 그저 화면이 지나가듯. 영 주제나 줄거리나, 상황적 묘사 같은 것들은 기억이 나질않아. 몹쓸 기억력!

그리고 다시 읽은 소설은 시골의 둘레길을 걷는 것처럼 이야기도 그렇게 시작을 해.

두 아들의 대비, 시대의 대비 그리고 역사나 전설과 영화의 리얼리티의 대비. 그리고 정치성향의 대비.

영화로 치자면 이 소설은 로드 무비의 형식을 빌린 성장영화라고 봐도 무방할 듯한데, 재미있는건 하지만 서술 기법은 스릴러에서 많이 쓰이는 기법이야.  화자의 시선을 관객이 따라가며 사건 하나 하나와 마주하고, 그 사건들을 엮어서 마지막에 숨겨진 범인을 보여주듯 사건의 실체를 공개하는거야.

 

 

k시의 모티브는 전라남도 고창이라는 생각이 들어. 고창의 동백이 가득한 절은 아마도 선운사 일것이고.

선운사 뒷곁에는 단정하고 아름다운 암자 관음전이 반듯한 자태로 있지. 그 관음전의 자태가 어쩌면 외지고 소외된 마을의 역사처럼 누군가가 혹은 누군가의 아들들이 갈고 닦아 맨들맨들 빛을 내어 대대로 전하는 이야기를 닮은 듯도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