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 있는 나날-가즈오 이시구로
자신의,직업에 강한 자긍심을 가지고 열심히 살았던 한 집사의 회고록
스티븐슨은 집사의 위치에서 수 많은 사람들이 1,2차 대전을, 그리고 전쟁 후 처리 과정을 지켜 본 사람이다.
그의 주인에 대한 존경심은 주인이 나치 옹호주의에 반 유대주의자이던 아니던 상관없다.
암울했던 역사 안에서 차분히 자신의 할일을 해 나가는 한 인간의 조용한 날들
열차의 배경 처럼 스쳐지나가는 역사와 정치 이념들
그 열차에서 꼿꼿이 허리를 세우고 주의를 관찰하며 자신의 할일을 머릿속에서 그리며 앉아 있는 집사가 떠오른다.
이 소설은 좋은 점이 참 많다. 이 소설은 무겁되 매몰되지 않고 가볍되 날지 않는 스케치된 풍경화가 그려진 종이 그림 같다.
흐트러지지 않는 화자의 시선과 주제에 매몰되지 않고 적당한 거리에서 이루어진 작가의 서술도 집사의 삶이 근대사와 함께 기승전결을 맞이 하는 것도, 집사의 사명이 주인의 꿈과 희망을 조용히 이루어지는걸 보는것이라는 그 앞에 주인이 나치의 협력자 였음이 드러나는 순간
닫힌 방문 안에 여인이 조용히 울고 있는 표현이 아마 작가가 꼭 한번 소설 안에서 주제를 직접적으로 나타낸 순간이 아닌가 한다.
스티븐슨은 평범하고 충성스러우며 자기직업에 자긍심을 가진 최고의 집사이다. 하지만 말대로 평범하고 유한 얼굴을 한 인물이 행한 악도 말그대로 악인 셈이다.
주인에 대한 충성심에 집사의 본분이 그무엇보다 우선하는 가치가 되어 버린 스티븐슨.
주인이 나치에 이용 당하는 사실을 알면서 묵시적 동조에 가까운 행동으로 말미암아 그는 주인처럼 모든걸 잃고 허망한 말로가 되었다
그리고 작가는 이 소설의 제목처럼 마지막 날의 서술을 해가 지는 황혼의 저녁으로 묘사했다 주제처럼.
이 소설은 우리에게 묻는다. 직,간접적으로 얽힌 사건에 눈을 감는 것만으로도 부역자가 되는 것인가.
스티븐슨은 자신의 주인이 어떤 일을 하는지를 알았고 주인이 연민을 느끼면서도 그 일을 행했다는 이유만으로 유대인 해고에 면죄부를 주려 했고, 시대는 역사는 이제껏 그런식으로 흘러 왔다.
어쩔 수 없는 일은 늘 일어나는 것이 인생이므로 소극적 가담자나 본의 아니게 휘말린 사람들에게는 면죄부가 주어졌지만 이제는 그들에게도 은닉죄와 같은 죄를 물어야한다.
본인은 어떤 일을 하는지 모르는 사이에 생겨나는 수많은 희생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계유정란을 통해 세조반정에 성공한 세조나 나치를 통해 2차 대전을 일으켜 수많은 학살을 행한 히틀러도 톱니바퀴처럼 스스로 맡물려 거대 바퀴가 스스로 굴러가게 만든것 안에는 세조나 히틀러 같은 선동가와 괴멜스나 한명회와 같은 적극적 가담자가 주축이 되지만 그 만으로 역사의 줄기를 만들어 내기에는 힘들다.
그 아래에는 수많은 소극적 가담자들과 비선택적 가담자들과 침묵하며 동조하는 다수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역사는 이들에게 유죄! 라고 낙인을 찍지는 않지만 그들은 역시 부역자들이다.
그리고 우리도 알게 모르게 부역자가 되어가는 것은 아닐까?